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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율의 후암동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1

Viva~La~Vida 2024. 1. 2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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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자료

현대를 살아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마음 한편 늘 영원 속에 함께 하고 싶은 예술가들의 작품과 그 작품에 대한 사랑이야기, 삶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안식과 위로를 주며 일상의 밋밋하고 평범한 삶에 애착을 불어넣어준다.

 

전 세계인의 대중들이 좋아하는 화가, 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이 선물해 주는 빈센트 반고흐의 이야기는 내가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자료이며 자주 꺼내보고 싶은 행복감을 담아 빈센트 반 고흐 1.2.3.4.5 시리즈로 여기에 안내한다.

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 편집자 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벌거벗은 이 여인은 왜 이토록 슬픈가,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 '슬픔'(일부), 1882, 검은색 분필, 44.5x27cm, 더 뉴 아트 갤러리 월솔.사진-헤럴드경제

 

빈센트 반 고흐, 벌거벗은 이 여인은 왜 이토록 슬픈가

저질러버렸다. 끝내 말하고 말았다. 1873년 어느 날, 스무 살의 빈센트 반 고흐 는 그렇게 외제니 로예에게 고백했다. 곧 호감을 표할 생각이긴 했지만, 이처럼 뜬금없이 일을 벌일 계획은 없었다. 로예는 고흐의 영국 하숙집 주인 딸이었다. 도도한 인상의 열아홉살 소녀였다. 고흐는 그런 성숙한 분위기의 로예에게 오래전부터 연심을 품었다. 사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날 고흐가 일을 저지른 후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고흐는 이 정적이 차츰 두려워졌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빈센트. 미안해요."귓가에 닿은 로예의 말이었다. 눈을 내리깐 그녀는 그에게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아, 아니. 내가 더 미안해." 고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뒷걸음질쳤다. 얼굴이 새빨개진 그는 도망치듯 물러났다. 고흐는 좁은 방에서 숨죽여 울었다. 그는 로예가 하숙집의 다른 청년과 진작부터 눈이 맞았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둘이서 몰래 약혼까지 한 일 또한 한참 후에야 전해 들었다. 그땐 정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 '붓꽃', 1889, 캔버스에 유채, 74.3x94.3cm, 게티 센터. 사진-헤럴드 경제

 

그리고 8년 뒤, 고흐는 또 다시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 이번 상대는 사촌 코넬리아 키 보스스트릭커, 줄여서케이였다. 그가 네덜란드 뇌넨에 있는 동안 함께 산 여인이었다. 얼마 전 남편을 잃은, 고흐보다는 일곱 살이 많은 과부였다. 고흐는 그녀에게 거침없이 다가갔다. 호감 상대를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빈센트 반 고흐 그도, 그녀도 불행한 사람이었다

케이는 그런 고흐가 귀찮았다 동정심도 많고 배려심도 깊은 케이였지만, 그녀에게도 이 남자의 행동은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고흐는 분명 따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뿐, 너무나 순수하고 이상적이었던 그는 현실 속 삶에는 늘 서툴렀다. 사랑에는 더더욱 서툴렀다.

 

케이의 마음을 모른 고흐는 끝내 그녀에게 청혼까지 했다."싫어, 싫어. 절대로 안 돼!" 인내심을 내려놓은 케이는 대놓고 질색해버렸다. 이는 거절 이상의 절규였다. 케이는 이제 고흐가 무서웠다. 그녀는 고흐를 놔둔 채 암스테르담의 부모 집으로 재빨리 떠났다. -----> 빈센트 반 고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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