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4
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1.2.3에 이어 4편을 소개한다. 긴 편집자료를 나누어서 올리는 것은 좀 더 빈센트 반 고흐를 추억하는 행복한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이다. 앞선 3편에서 잠시 소개하였지만, 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의 자세한 스토리 텔링과 함께, 암스테르담의 빈센트 반 고흐 박물관에서의 기억을 다시 불러오는 기회가 되었다.
불행의 연속 빈센트 반 고흐의 삶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 남부 마을 쥔더르트에서 목사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그는 열한 살 때 기숙학교에서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를 익혔다. 이어 열세 살 무렵 중학교에 가는데, 여기서 제대로 된 첫 미술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학업을 오래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는 겨우 2년 뒤 자퇴했다. 이쯤부터 발작이 시작됐다는 설, 그저 학비가 없었다는 설 등이 있다.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 빈센트 반 고흐
1869년, 고흐는 삼촌들을 따라 구필(Goupil) 화랑에 취업했다. 동종 업계 중에서도 꽤 규모가 큰 곳이었다. 거기에서 안목과 지식을 키웠다. 일도 썩 잘하고, 손님에게도 친절했다. 그는 이렇듯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고흐는 1873년께 구필 화랑 런던 지점으로 몸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안 돼 로예에게 바람을 맞고 만다.
목사의 길 대신 탄광촌을 찾은 빈센트 반 고흐
기운 빠진 그는 그때부터 일도 제대로 못했다. 이 무렵 그림을 무조건 비싸게만 팔려고 한 관리자와의 갈등이 컸다는 말도 있다. 그는 결국 잘렸다. 부모는 일거리를 잃은 고흐에게 목사의 길을 권했다. 그는 가난한 탄광촌을 찾았다. 그곳에서 광부처럼 살며 신의 뜻을 알렸다. 그러던 어느 날, 고흐는 새카만 먼지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곡괭이를 지고 퇴근하는 것을 봤다.
화가가 되기로 다시 마음 먹은 날들
이들은 흐르는 땀을 훔치며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가 살면서 본 그 어떤 장면보다 성스럽고 눈물겨웠다. 마음속 응어리진 무언가가 뭉근히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런 걸 그려야겠다. 그가 구원 대신 위로를 택한 순간이었다. 돌고 돌아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였다.
시엔과 눈이 마주친 싸구려 술집
하지만 고흐의 그림을 원하는 이는 없었다. 여전히 화랑에서 일한 동생 테오가 물심양면 도왔으나,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다. 속상한 고흐는 싸구려 술이나 홀짝이며 몸을 달랠 요량이었다. 낡은 술집 문을 연 그때, 고흐는 시엔과 눈이 마주쳤다. 둘은 찰나의 사랑을 했다. 끝내 그가 사랑한 자리는 다시 폐허가 되고 말았지만.
오해와 누명을 지친 고흐가 찾은 곳이 뉘넨의 부모 집이었다. 고흐는 옆집 여자 베게만이 독약을 먹을 줄은 추호도 몰랐다. 그는 결단코 농가의 소녀를 임신시키지도 않았다. 이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다. 그는 오해와 누명을 흠뻑 뒤집어써야 했다. 방에 틀어박혀 정물화만 그리는 날이 점점 늘 수밖에 없었다.
빈센트 반 고흐 파리로 떠나다
고흐는 결국 떠날 채비를 했다. 1886년, 그는 프랑스 파리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 매력적인 도시는 고흐에게 설렘과 절망을 함께 안겼다. 고흐는 젊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화사한 그림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그가 살면서 본 가장 맑은 작품들이었다. 그 또한 지금보다 더 밝은, 보다 강렬한 색채를 화폭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조차 고흐가 있을 곳은 없었다. 그는 여기서도 돈을 벌지 못했다.
고흐의 좌절과 슬픔의 나날
밤낮없이 그렸지만, 그의 작품을 사겠다는 이는 여전히 없었다. 고흐는 종종 술집 구석에 앉아 울었다. 왜 이렇게 삶이 풀리지 않는지를 곱씹으며 흐느꼈다. 그림만 그만두면 또 다른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죽어도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싸구려 압생트와 브랜디가 쌓였다. 파리에 있는 동안 고흐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했다. 울컥하는 마음의 병 또한 깊어졌다.
남부 아를로로 향하다
888년 2월, 고흐는 파리에서 벗어나 남부의 아를로 향했다. 그는 조용한 이 시골에서 일종의 화가 공동체를 꾸리고 싶었다. 그의 뜻에 응한 화가는 딱 한 명이었다. 폴 고갱, 마초적 기질이 다분한 또 다른 아웃사이더였다. 둘은 나란히 앉아 그림을 그렸다. 태양을 그렸고, 해바라기를 그렸고, 마을의 여인을 그렸다.
폴 고갱과의 만남, 그리고 귀를 자르다.
두 사람은 이 와중에도 툭하면 싸웠다. 애초에 둘의 성향은 극과 극이었다. 잘 맞을 수 없는 사이였다. 서로가 꾹 눌러온 갈등이 폭발했다. 고흐와 고갱은 죽일 듯 크게 다퉜다. 발작한 고흐는 자기 귀를 싹둑 잘랐다. 기겁한 고갱은 파리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둘이 함께 살고서 고작 2개월 만에 생긴 일이었다.